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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ar

당나귀 발굽에 터져 죽는 OO을 상상한다 
​Imagine a OO being crushed to death by a donkey's hoof

 

  2019년 슬픔을 주제로 개인전을 한 이후로 나는 쭉 분노라는 감정을 숙제처럼 마음속 한켠에 두고 있었다. 처음 감정을 주제로 삼기 시작했을 때 다뤄보고자 마음먹은 감정들(불안, 질투, 슬픔, 분노) 중 아직 다루지 않은 유일한 감정이기 때문이었다. 분노는 그 성향이 단순하면서도 복잡해 유독 풀어내기 어려운 감정이었다. 깊은 곳에서 삭고 삭아 형체를 알아볼 수도 없는 무언가가 되어버린 채로 나의 의식을 갉아먹는, 그 분노의 가장 끝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꼽추의 신체와 노예의 신분으로 태어난 이솝은 살아있는 동안 수백 편의 우화를 썼다. 그는 자신의 재능 덕분에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났지만, 자신의 재능 때문에 사재들에게 살해당했다. 나는 그의 마음속에서 미친 듯이 불타오르는 삶에 대한 분노-단 한 번도 분노로써 표출되지 못했던-로 인해 끊임없이 샘솟았을 창작의 원동력을 상상해 보았다. 그리고 그의 사후를 상상해 보았다. 그의 원혼이 분노의 가장 깊은 곳에서 길을 잃고 영원히 헤매고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자신 속에 갇혀버린 그는 나 자신, 그리고 우리 모두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이때까지 마음속에 쌓여 표출된 적 없는 수많은 분노들이 변형되고 사라졌다 다시금 돌아오는 진동을 오롯이 받아내며 삼키는 나의 싸움, 사회 속의 현대인들의 분투를 말이다.